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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헌에 최조로 기록된 "효자 향덕 이야기"
박노필 기자 | 승인 2019.05.22 08:25
2019년 5월 19일 제1회 효자 향덕 추모제

효자 향덕에 대하여 :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효행이 기록되어 있고, 『동국삼강행실(東國三綱行實)』에 그림과 함께 효행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755년(경덕왕 14) 봄 심각한 기근이 전국을 휩쓸고 전염병까지 돌자, 부모 공양이 막연해진 향덕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였고. 또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향(鄕)에서는 이 사실을 주(州)에 보고하고, 주에서는 왕에게 아뢰니, 왕이 명을 내려 벼 300곡(斛, 1곡은 10두)과 집 한 채, 그리고 토지 약간을 내렸다고 합니다.

효장 향덕 정려

그리고 관리에게 명하여 비석을 세우고 사실을 기록하여 표시하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그곳을 이름 하여 ‘효가리(孝家里)’라고 합니다.. 향덕의 효행을 들은 경덕왕(景德王)의 명으로 포상과 함께 그가 사는 웅천주 판적향(현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의 옛 이름)에 비석과 정려(旌閭)가 세워졌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그로부터 987년 후인 1741년(영조 17)에 관아의 서리 오막(吳幕)에 의해서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정려비의 앞에 흐르는 혈흔천도 효자 향덕에서 유래합니다.

-혈흔천의 유래 : 상단의 이야기와 중복되는데, 755년(경덕왕 14)에 온 나라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전염병까지 돌았었는데, 향덕의 부모 또한 굶주리고 어머니 등창으로 병석에 누웠습니다. 어느 날 어머님의 병에는 고기를 먹어야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국을 끓여 드리니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였고 또 다리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부모님께 드릴 고기를 잡기 위해 냇가로 나갔는데 마침 추운 겨울이어서 강이 얼어 있었음. 고기를 잡기 위해 얼음을 깨고 강으로 들어갔는데 깨진 얼음들이 상처를 건드려 피가 흘러 강을 붉게 물들였다고 함.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은 이 강을 혈흔천(血痕川)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효자 향덕 정려비

- 1741년(영조 17)에 세운 정려비의 앞면에는“지극하여라, 효자여/ 떳떳한 마음으로 온전함을 이루었으니/ 이미 허벅지 살을 베었는데/ 또 다시 종기를 빨았도다/ 임금께서 이를 가상히 여기시어/ 땅을 주고 집을 내리셨다/ 마을이 효자로서 이름났으니/ 영원토록 그 이름 계속될지어다. (允矣孝子 克全彛性 旣□其股 亦厥□□ 王庸是嘉 爾田爾宅 地以人名 百世不朽-연의효자 극전이성 기□기고 액궐□□ 왕용시가 이전이택 지이인명 백세불후)”라는 시가 쓰여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효자에 대한 정려비로 조선시대에 다시 건립된 것이지만 효행 정려에 대한 선례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예로 부터 공주는 충효의 본 고장으로 효자, 효부들이 많습니다. 가정의 달 5월, 우리들의 삶에 투영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내일의 역사가 됩니다"

박노필 기자  fldesig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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